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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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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할 수 없는 질문

글쓴이 : 자그나 님 날짜 : 2017-02-28 (화) 13:35 조회 : 14463
글주소 : http://oshokorea.com/osho_talk/797

 소위 종교라고 불리는 것들이 인류에게 끼친 가장 큰 해악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끼친 가장 큰 해악을 꼽는다면 진정한 종교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진정한 종교의 탄생을 가로막았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저마다 자기만의 진정한 종교라고 주장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그대의 마음을 세뇌시켜 왔다. 힌두교인들은 자기들의 종교가 세상에서 유일한 진짜 종교이며 다른 종교는 다 가짜라고 믿는다. 유대교인, 기독교인, 불교인, 이슬람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종교를 발견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일치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종교는 이미 그대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 안에서 태어났다. 이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나는 이것을 그들이 끼친 가장 큰 해악으로 본다. 진정한 종교가 없다면 우리는 식물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로 살아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식물인간은 가죽만 인간일 뿐이다. 그는 존재의 심연에 도달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만 자기를 인식한다.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듯이,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만 자기를 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견해를 내세우는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한 처지에 있다. 그들 역시 타인의 눈을 통하지 않고는 자기를 알지 못한다. 소위 종교라고 불리는 것들은 이 사회를 맹인  수용소로 만들었다. 그들은 그대에게 눈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역설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에게 눈이 있는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눈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가 우리를 낙원으로 이끌 것이다.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생각하면 오히려 길을 잃는다.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대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생각이 그대의 의심과 지성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소위 종교라는 것들에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들은 그대가 어리석고 멍청한 상태로 질질 끌려오기를 바란다. 그들은 그대의 지성이 깨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이를 위해 신앙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신앙은 지성을 죽이는 자살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종교는 그대에게 신앙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정한 종교는 체험을 요구할 뿐, 의심을 떨쳐버리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대의 의심을 날카롭게 연마하여 끝까지 탐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진정한 종교는 그대가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점을 명심하라. 나의 진리는 결코 그대의 진리가 될 수 없다. 진리를 건네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호메트의 진리는 마호메트의 진리일 뿐이다. 이슬람교인이 된다고 해서 마호메트의 진리가 그대의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대에게 있어서 그 진리는 단지 신념으로 고착될 뿐이다. 마호메트가 진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는가? 예수가 광신에 빠진 정신질환자였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현대의 정신과 의사와 정신분석학자들은 예수에게 정신병의 징후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예수는 자신을 신의 독생자라고 선언하면서 '나는 이 세상을 고통과 죄악에서 구원하려고 온 메시아다!'라고 천명했다. 그대는 이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가? 나는 그가 단 한 사람이라도 죄악과 고통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확실히 과대망상증 환자였다. 그대는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설령 고타마 붓다가 진리를 안다고 해도 그가 정말로 진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해 볼 길이 없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그대가 진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순히 대중의 견해를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 그대는 대중 심리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 심리는 가장 차원이 낮은 것이다.

 

 진리는 최고의 지성을 갖춘 사람에게만 다가온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받은 사람은 불구자가 된다. 출발점부터 신앙을 갖도록 세뇌된 사람은 영혼을 잃어버린다. 그는 식물인간이 될 것이고 진실로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식물인간이 되는 것.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 수 있겠는가?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누가 이런 앎을 방해하는가? 그것은 악마의 소행이 아니다. 교황, 사제, 랍비, 샹카라차리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그대의 앎을 방해한다. 그들이 진짜 악마다.

 교회와 절, 이슬람 사원, 가톨릭 성당은 신이 아니라 악마에게 헌신하고 있다. 그들이 해온 짓은 조금도 신성하지 않다. 오히려 잔혹한 학살극에 가깝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파괴했다. 그들은 이 외에도 많은 일을 저질렀다. 인간의 마음을 파괴하는 이 기본적인 악행을 저지르기 위해서는 다른 악행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우주의 신비를 파괴했다. 나는 이것을 가장 큰 범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반복하겠다. 그들은 우주의 신비를 파괴했으며 그것은 가장 큰 범죄 중의 하나다. 그들은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교묘한 방식으로 그런 짓을 해왔다. 그들이 우주의 신비를 파괴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내 말은 그들이 완성형의 해답을 제공해 왔다는 뜻이다. 모든 종교는 저마다 교리 문답서를 갖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내게 와서 묻는다.

 

 왜 당신은 교리 문답서를 출간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책은 너무 종류가 많아서 다 읽기가 어렵습니다. 그 책들을 다 읽고 당신의 메시지를 찾아내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작은 소책자를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 기독교인들이 했던 것처럼 작은 책자에 교리 문답을 실어서 출간하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게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내게는 어떤 교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나의 그 수많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 그 정글속으로 들어가 나의 메시지를 발견해야만 한다. 거기서 무엇인가 발견할지, 아니면 정글에 갇혀 그대 자신이 실종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실종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모든 종교가 교리 문답서를 갖고 있다. 그러나 교리문답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대답될 수 없는 질문에 답한다. 심지어 그대가 묻기도 전에 답을 내놓는다. 어떠한 종교도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다. '그대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답을 기대하지 말라. 삶은 신비다.'라고 말할 만큼 대범한 종교가 없다. 대답될 수 없는 질문이 있을 때에만 삶은 신비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삶을 신비로운 채 놔두면 종교가 그대의 목을 조를 힘을 잃는다.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이 존재한다면 그대의 메시아와 신의 대리인, 신의 화신들은 무엇인가? 이 어리석은 자들이 해온 일은 무엇인가? 그들 모두가 근본적으로 대답이 불가능한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해 왔다. 그들은 대답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했다.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겸손하게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는 '예, 질문은 있지만 해답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지성이 더 성숙해지고 존재의 차원으로 깊숙이 들어갈 때, 그대는 그 존재를 느끼기 시작한다. 삶 속에서 그 존재를 구현하고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대의 삶은 점점 더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되고 춤이 된다. 신학이 아니라 사랑의 경험이 그대를 찾아온다. 삶이 더 신비에 휩싸이게 된다. 너무나 신비로워서 그런 신비가 그대를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정도다.

 그런데 종교는 이미 정해진 해답을 내놓는다. 존재계가 여기에 있고, 자연히 '누가 이 존재계를 창조했는가?'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의문을 그대로 남겨두라. 누구의 해답도 받아들이지 말라.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힌두교인, 불교인, 자이나교인, 유대교인 등 도처에 장사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 장사꾼들은 뭔가를 팔려고 고객을 찾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파는 것은 독약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거나 '알라가 세상을 창조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해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해답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아는가? 그 해답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대의 질문이 죽는다. 그리고 질문의 죽음과 더불어 그대의 탐구도 끝난다. 이제 그대의 탐구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여기서 나는 나의 권위를 걸고 말한다. 나의 권위는 베다, 성경, 코란을 등에 업은 것이 아니다. 나의 권위는 오로지 나 자신의 경험, 나 자신의 탐구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대가 나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의 해답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만의 탐구를 계속해 나간다면 점차 알게 될 것이다. 해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사라진다. 바로 그때가 신비를 느끼는 순간이다. 해답을 얻는 것과 질문이 사라지는 것의 차이점을 알겠는가? 소위 종교라고 하는 것들은 그대의 의문을 억누른다. 그들은 그대의 질문을 해답으로 덮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신이 내려준 답이라고 주장한다. 힌두교인들은 베다가 신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허튼 소리다. 베다는 온통 불합리한 내용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엉터리 책을 쓴 신이라면 그는 당장 신의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해답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신으로부터 직접 받거나, 또는 신의 대리인을 통해 얻은 것처럼 포장한다. 이것은 그 해답으로 세뇌시켜서 그대의 의문을 가라앉히려는 수작이다. 진정한 종교는 이 모든 해답과 권위를 무시하고 그대 안의 진실한 의문을 끄집어낸다. 이것이 참된 종교의 역할이다. 이런 종교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도록 그대를 돕는다. 위험할지라도 기꺼이 그 길을 가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세상의 거짓 종교들은 그대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삶의 방식을 제공한다. 그러나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그대는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탐구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대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대는 어떤 해답도 찾지 못할 것이다. 지금껏 답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해답은 거짓이다. 그대는 해답이 아니라 실체와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실체는 의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그대의 의문이 죽음으로서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질문이 사라지고 어떠한 해답도 나타나지 않을 때, 그 순간에 신비의 문이 열린다. 진정한 종교는 이 신비함 속에 존재한다. 처음에 과학은 기존 종교가 밟고 지나간 길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과학은 그 길을 오랫동안 따라갈 수 없었다. 실체와 대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허구의 세계에서 계속 살아남았지만 과학은 곧 실체와 직면해야 했다. 과학은 '우리는 곧 우주 전체의 비밀을 벗길 것이며,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하면서 야심만만하게 출발했지만 그런 생각을 백년도 유지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이나 러더퍼드 같은 사람들은 물질의 신비를 가장 깊이 파고들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신비주의자의 말과 흡사하다. 이제 과학자들은 가장 겸손한 사람들이다. 18세기의 낡은 에고이즘과 19세기의 과학자들은 지상에서 사라졌다. 이제 과학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한 앎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우리의 삶은 더 풍족하고 안락해졌다. 생명을 더 연장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 의문은 끝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그대를 다시 무지한 상태로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종교는 그대를 지식으로 가득 채웠다. 이것은 크나 큰 해악이다. 그들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기독교 전체의 교리가 담긴 문답서를 건네준다. 그것을 기계적으로 외우기만 하면 한 시간 안에 기독교 전체의 교리를 독파하고 앵무새처럼 그것을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아무리 반복해서 외워도,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진리를 아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지식을 떨쳐 버리는 것, 이것이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다. 지식은 에고를 살찌운다. 그리고 에고는 닥치는 대로 모든 지식을 수중에 넣으려고 한다. 지식을 떨쳐버려라.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라. 이 말은 성직자들이 그대를 오염시키기 전의 그 지점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뜻이다. 그 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순진무구하고 무지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질문이 다시 솟아오르게 해야한다. 그럴 때 탐구열이 다시 불붙는다. 탐구열이 살아나면 그대는 더 이상 식물인간이 아니다. 그때 삶은 모험으로 가득 차게 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비로운 향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장미꽃을 그대로 지나치지 못한다. 장미꽃이 그대를 손짓해 부른다. 부르는 게 아니라면 장미꽃의 향기는 무엇인가? 향기는 장미꽃의 언어다.

 

 제발 잠깐만 저와 함께 있어 주세요. 여기는 너무 춥고 외로워요. 그대는 지나칠 수 없다. 어떤 어린아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신학자와 성직자들은 마음의 쓰레기 같은 지식으로 차 있어서 장미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 사람들은 쓸모없는 골동품과 뼈다귀를 긁어모으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안다. 심지어 누가 신을 창조했는지도 안다! 그들은 누가 이 세상을 창조했는지, 누가 영혼을 창조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가련한 장미꽃에 대해 그들이 무엇을 아는가?

 

 

시인은 말한다. 

 

 

 

 장미꽃은 장미꽃이고 장미꽃이다.

 

 이 말은 대답인가? 아니면 질문인가? 이 말은 대답도 아니고 질문도 아니다. 그저 사실에 대한 서술이며 반영이다. 시인은 그가 보는 것을 말할 뿐이다. 시인은 경전을 인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계속 경전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경험이 아니다. 그대 스스로 체험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 지식은 기만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이 종교들은 사람들을 지식으로 가득 차게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 참된 종교는 사람들이 다시 순진무구한 상태로 돌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사람들이 탐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종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대 스스로 발견해 내야 하는 답을 그들이 덥석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그대는 눈치 채지 못한다. 그대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대의 삶은 모조품이다. 그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남들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대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지침을 내려준다. 그대의 행동과 본성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그들이 일러주고, 그대는 맹목적으로 그들의 말을 따른다. 그러나 그대는 아주 단순한 법칙, 즉 '이 세상에 고타마 붓다는 단 한 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2천5백년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고타마 붓다가 되고자 했지만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나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 참 다행한 일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성공했다면 그건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모조인간이었을 테니까. 아무도 고타마 붓다가 될 수 없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독특함을 갖고 있다. 고타마 붓다에게는 그의 고유한 특성이 있고, 그대에게는 그대만의 개성이 있다. 붓다가 그대를 추종해서도 안 되고, 그대가 붓다를 추종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모조인간이 되는 지름길이다. 모조인간이 되는 순간, 그대는 자신의 삶과 접촉할 기회를 잃는다. 내가 '식물인간'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그대는 다른 어떤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대는 자신의 진짜 삶을 완전히 망각했다.

 

 가톨릭 수도원 중에는 수도사가 일단 한 번 들어가면 결코 나오지 않는 수도원이 있다. 많은 수사들이 그런 수도원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처럼 되려고 애쓴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일부만이라도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가 되려는 희망을 품고 그들은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모조품은 모조품일 뿐이다. 그것은 가면이다. 그 가면을 조금만 긁어보면 그대의 진짜 얼굴이 여전히 거기에 숨어 있다. 모조품으로는 이 존재계를 속일 수 없다. 거기에 속아 넘어 가는 사람은 그대 자신뿐이다. 기존의 거짓 종교들은 그대에게 특정한 이념을 심어줌으로써,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지시한다. 그대가 할 일은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았다. 그대는 눈먼 장님처럼 그들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그러니 인류 전체가 맹목적인 삶을 살아간다 해도 이상 할 게 없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종교가 그대를 플라스틱 모조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잠은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한 지침을 내려준다. 그대는 완전히 세뇌되었다. 그대는 로봇이 되었다. 그리고 로봇의 기능에 충실할수록 위대한 성자로 존경받는다. 종교가 그대를 칭송한다. 자신의 실체와 멀어질수록 그대는 더 존경받는 인물이 된다. 그리고 그대가 자신의 실체를 보여주는 순간, 그 존경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느 누구의 계율도 따르지 말라. 그대는 깨어 있는 의식을 통해 스스로 계율을 발견해야 한다. 산야신들이 내게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유일한 메시지는 더욱 그대 자신이 되라는 것이다."

 그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대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대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그대 자신으로 존재하라. 그대의 본성에 충실해라. 그대 앞에 흐르고 있는 이 삶의 강물을 더 자각하라. 그대의 가슴 속에 고동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그대의 숨결 속에 숨어 있는 이는 누구인가?

 그대의 행위, 생각, 느낌,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더욱 깨어 있어라. 언덕 위에서 지켜보는 사람처럼 주시하라. 그 '지켜봄'이 그대만의 계율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 삶의 방식은 그대만의 것이 될 것이다. 그 '지켜봄watching'은 그대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아내는데 도움을 준다. '지켜봄'은 그대가 불필요하게 지고 다니던 짐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적합한 것만을 선택하도록 도와준다.

 

 깨어있는 의식으로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다.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모조품처럼 살고 있다면 그대의 삶은 잘못된 것이다. 나의 눈으로 보면, 세상에서 유일한 죄악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일한 미덕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다.

 기존의 종교들은 그대 자신에 대한 앎을 방해해 왔다. 이젠 그들이 지껄여온 허튼 소리들을 제거할 때가 되었다. 이제 과거는 끝났다.

 다시 아담과 이브의 시대로 돌아가라. 모세, 마하비라, 마호메트, 예수, 공자, 노자가 존재하지 않는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라. 그 곳엔 행동의 지침과 계율을 내려주는 사람이 없다. 목사도 없고, 랍비도 없고, 교황도 없다. 그럴 때 그대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상황에 놓인 것처럼 행동하라!

 

 

 

                                                                <종교의 사슬에서 벗어나라> 오쇼 강의 손민규 옮김   p127~142


이정환님 2018-05-24 (목) 19:30
그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대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대가 누구인지 아는 것리다. 그대 자신으로 존재하라. 그대의 본성에 충실해라. 그대 앞에 흐르고 있는 이 삶의 강물을 더 자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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